Dusko Goykovich 연주곡/Samba Do Mar, No More Blues, How Insensitive
딕시밴드와 파티피플을 위한 재즈연주를 하다가 18세에 베오그라드 라디오 빅밴드 멤버가 됐다. 여기서 솔로이스트로 성장한 후 독일로 건너가 1956년 프랑크푸르트 올스타스의 일원으로 첫 레코딩을 했다. 있으면서 스탄 겟츠, 쳇 베이커 등과 연주하게 된다. 1958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연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에서 인기 연주자로 자리를 잡게 된다. 편곡을 공부했다. 이 시기에는 공부를 위해 카운트 베이시나 베니 굿맨, 스탄 켄튼 같은 쟁쟁한 밴드의 제의까지 뿌리칠 정도였다. 버클리 재학시에 게리 버튼, 마이크 깁스, 사다오 와타나베, 스티브 마커스, 데이브 영 같은 버클리 동창들과 녹음작업을 하기도 했다. 으로부터 밴드에 들어오라는 제의를 받고 흔쾌히 수락한다. 거장 트럼페터였던 퍼거슨은 두스코 고이코비치를 자신을 대체할 2인자로 발탁하고 작곡과 편곡까지 맡기게 된다. 이 시기가 두스코 고이코비치에게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도약기였다. 우디 허먼 밴드 활동을 접고 유럽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자신의 음반작업을 시작했다. 1966년 "Swinging Macedonia"앨범에서는 맬 왈드론과 나탄 데이비스가 함께 연주했고,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게리 멀리건, 클라크 테리, 리 코니츠, 소니 롤린스, 필 우즈, 듀크 조던 등 쟁쟁한 재즈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아울러 60년대 최고의 재즈오케스트라 가운데 하나인 Clarke-Boland Big Band에서 연주활동을 계속한다. Dutch Skymasters 나 NDR big band가 그의 작곡과 편곡을 연주했다. 1968년부터 뮌헨에 정착해 프리랜스 연주자들로 구성된 빅밴드를 만들었으나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Jimmy Heath, Eddie Gomez, Mickey Roker등과의 연주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