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시

잘익은사과-김혜순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하는 애송詩 100편中 25 /사랑의 숲-오카리나연주

다음에...^^* 2008. 4. 17. 14:56

▲ 일러스트=권신아


잘 익은 사과 / 김 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2005년>

김 혜순 (1955.10.26 ~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당선
1979년 '문학과지성'에 시로 등단
시집 『또 다른 별에서』(1981년),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1994년), 
『어느 별의 지옥』(1997년), 『우리들의 陰畵』(1995년),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1994년) 『불쌍한 사랑기계』(1997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년), 『한잔의 붉은 거울』(2004년)등
김수영 문학상(1979년), 소월시문학상(2000년),
현대시작품상(2000년), 미당문학상(2006년)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