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시

성탄제-김종길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하는 애송詩 100편中 29 / 모두가 사랑이에요-하모니카 연주

다음에...^^* 2008. 4. 21. 13:35

▲ 일러스트=권신아


성 탄 제 / 김 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설어운 설흔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金宗吉: 1926 ~ ) 
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 
고려대 영문과 졸업. 영문학자. 
1958~92년 고려대 영문과 교수및 문과대학장을 엮임하고
1988년 한국시인협회장을
2003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을 지냈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門)>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성탄제>(1969), <하회에서>(1997), <황사현상>(1986), 
'해가 많이 짧아졌다'(2004년) 등 다수 
평론집 <시론>, <진실과 언어>, <시에 대하여> 등. 
2007년 [청마문학상], 2005년 [이육사 시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는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