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시

사평역에서-곽재구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하는 애송詩 100편中 7 / 사평역에서-김현성,박종화

다음에...^^* 2008. 3. 25. 12:11

▲ 일러스트-권신아


      사평역(沙平驛)에서 - 곽 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김현성 / 사평역에서 박종화 창작 골든베스트 2 [생활속으로] / 사평역에서

     
-  곽 재 구  -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사평역>으로 당선.
1981~87 '5월시'동인으로 활동.
2001년~현재 순천대 문예창작과 교수 
1983년 첫시집 <사평역에서>간행.
시집<전장포 아리랑> <한국의 여인들>
<서울 세노야>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1993년 기행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
동화 <아기참새 찌꾸> <낙타풀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등
신동엽창작기금(1996) 동서문학상(1997) 등 수상

사평역은 실제로 존재하는 역이 아니다.  전라남도의 남평역이라는
작은 역사(驛舍)가 모델인 것으로 전해진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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